지겹도록 긴 스티브잡스 전기를 이제서야 아이팟 등장까지 읽었다. 전체 중 2/3 정도 읽은 듯 하다. 전체를 읽은 후에 한번 정리를 해 볼 생각이지만 지금까지 읽으며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제품, 사업을 성공시킨 근원적인 원인을 생각하게 되었다. (보는 이들의 판단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은 바로 제품,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다. 새롭지는 않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그 이야기를 더 절실하게 느꼈다고 할까?

스티브 잡스의 행보는 어쩌면 연애와 비슷하다. 대상에 대한 맹목적이다 못해 광신적이기 까지 한 애정에 기반한 연애 말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그렇지 않은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서 얼마나 맹목적이었는가,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일말의 타협도 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단 1%의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디테일에 몰두했을 것이다. 그 만큼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기술을 사랑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쩌면 일반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 혹은 회사의 구성원과 바로 그 지점부터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기이기 때문에 나중의 스티브 잡스와 어린 시절부터 연결시킬 수 밖에 없었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제품과 기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워왔고 그로 인해 자신이 하고 싶은 명확한 것을 갖고 있었다.(기술을 통해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중요한 것은 그 명확한 것이 논리적이거나 분석을 통해 도출된 것이 아니라 그의 가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고 그렇기에 그것을 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 혹은 회사원들은 어떤가? 아마도 취업하거나 이직을 할 즈음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회사들 중 가장 매력적인 대상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관심 있는 영역에 대한 고민을 했겠지만 그 보다는 안정적인 요소들(회사의 규모나 연봉 등)을 더 크게 고려하지는 않았던가? 그렇게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열정의 정도에서 분명 차이가 있다. 짝사랑 하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과 친하지 않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의 확연한 차이 정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철학이 부재하다. 특정 대상을 아주 오랜 기간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철학, 통찰이 생겨난다. 영화를 좋아하면 어떤 영화가 필요한지? 게임을 좋아하며 어떤 게임이 좋은 게임인지? 음악을 좋아하면 현재 대중에게 필요한 음악은 무엇인지? 자신만의 철학이 생겨나고 답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철학이 있다는 그 자체이다. 철학을 갖게 되면 일에 능동적이 된다. 일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략적 방향성을 갖게 된다. 하지만 철학이 없다면 순간 순간 효과적인 대응이 전부이다. 대응은 잘하기에 문제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도 잘한다는 평가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새로운 것, 혁신을 만들 수 없다. 그렇기에 철학이 부재한 리더는 무엇보다 가장 위험하다. 대체로 시류와 분위기에 휩쓸리다 끝난다. 하지만 철학을 갖고 있다면 그 방향으로 맹렬히 달려갈 수 있다. 물론 그 방향이 틀릴 수도 있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 보다는 명확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것이 성공 가능성은 더 높다.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에 디테일에 강하고,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수정 후 재도약 또한 쉽다.


스티브 잡스도 가야 할 철학과 방향이 명확했기에 강력한 집중을 할 수 있었으며 디테일에 강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 물론 시류에 맞지 않거나 니즈를 충족 시키지 못하는 방향일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 많은 제품, 서비스가 실패하는 이유는 시류와 니즈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규모에는 영향을 미치겠지만) 절대적으로도 잘 만들었다면 없던 니즈와 시장도 생겨난다. 애플의 수 많은 제품이 입증해 주지 않았던가? 폐쇄형 맥의 방식은 윈도우와의 대결에서 실패할 것이라 했고, 복잡한 음반 업계를 하나의 체계로 정리할 수 없을 것이라 했으며, 세계 최고의 컨설팅펌 맥킨지도 스마트폰은 시기상조라 했다.

가끔 둘러보면 자신이 속한 기업의 제품에 일로서만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제품을 팔면서 기계치라고 하고, 게임 비즈니스를 하면서 게임을 싫어한다고 하며, 웹서비스 회사를 다니면서 SNS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럴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다. 그런 사람들이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을 내 놓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마니아(조금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덕)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있다. 외골수 이기도 하고 사회성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미래의 비전을 갖고 있다. 그 비전은 아주 오랜 동안 쌓여온 애정으로 잉태된 내공이다.

자신이 태생적인 마니아가 아니라면 항상 제품과 서비스에 얼마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가? 관심과 애정을 갖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할 수 있는가? 살펴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스카이워커 Luke Skywalker 트랙백 0 : 댓글 0

"인터넷, SNS 등의 부상으로 인해 전통적인 미디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마케팅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아주 예전부터 교과서처럼 하던 이야기를 요즘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특히 모바일 환경의 도래는 이를 더욱 가속화시켜 정점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전통 미디어 중심에서 인터넷 기반 소통으로 전환, 혹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채널로의 인식의 당위성이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그에 대한 대응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질적 특성과 깊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렇다. 모바일 환경 도래 전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트, 블로그, 메신저 등을 통해서 다양한 이슈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인터넷을 통해 전통적인 미디어인 TV, 신문 등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반대 메시지도 활발하게 개진되기도 했고, 특정 대상에 대한 감추고 싶은 은밀한 숨겨진 사건들도 쉽게 전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크게 2가지 새로운 환경이 도래했다. 바로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에 따른 모바일 환경의 도래와 기존 싸이월드나 블로그 등의 초장기 SNS와는 성격이 다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신흥 SNS의 성장이다.


 

모바일 환경의 도래는 특정 사용자와 웹(정보, 콘텐츠)이 항상 온라인 상태를 가능하게 했다. 과거 PC앞에 앉아야 특정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접근이 가능하다. 즉 이전 보다 정보에 접근할 기회와 채널이 비약적으로 증대 되었음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대상, 현상에 대해서 100 80의 정보를 얻어야 이해가 가능하다고 할 때 과거 PC 중심 시절에는 60까지만 얻게 되어 이해가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나머지 20을 모바일 통해서 채워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모바일 환경은 새로운 형태의 소통을 만들어 냈다. 먼저 팟캐스트가 있다. 물론 팟캐스트가 새로운 모델은 아니다. 이전에도 PC에서 팟캐스트를 다운받아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친숙하지 않았고 MP3 다운로드나 오디오북과의 차이점도 불명확했다. 실제 팟캐스트의 확산은 스마트폰, 아이폰의 확산으로 비로소 이루어졌다. 한 가지 재미 있는 것은 과거 라디오 방송과 같은 오디오를 통한 메시지 전달은 지극히 아닐로그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웹의 태반인 텍스트 정보와 비교할 때 오디오는 그 이해에 있어서 훨씬 쉽고 친숙하기에 강력하다. 나꼼수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나의 큰 주제가 있고 그 주제에 대한 새로운 오디어오 정보의 업데이트를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팟캐스트 모델은 나꼼수를 통해서 이제 친숙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오디어 정보는 이동중, 두 손으로 다른 일을 해야 하는 모바일 환경에 아주 적합한 콘텐츠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나꼼수에만 한정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꼼수가 팟캐스트를 활용했기 때문이지 그것으로 팟캐스트 모델 자체가 하나의 채널이 되었다 보기에는 조금 억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나꼼수 자체의 컨텐츠의 힘이 압도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꼼수를 통해서 나꼼수와 비슷한 형태의 팟캐스트 형태의 콘텐츠들이 늘어날 것이고, 사용자들 또한 이런 콘텐츠의 소비가 늘어갈 것이다. 즉 기존 전통적인 미디어보다 더 영향력이 강한 개인, 단체 미디어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출현하고 소통할 것이다. 이 부분은 틀린 예측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리고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가 있다. 물론 문자나 메신저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높은 접근성, 무료라는 강력한 가치로 인해서 모바일 환경에서 이제는 주요한 소통의 채널이 되어 버렸다. 모바일 메신저로 인해서 메시지의 전파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범위도 넓어졌다. 또한 모바일 메신저의 근간은 대부분 지인이다. 그 말은 내가 받게 되는 메시지의 신뢰성이 이전 어떤 채널의 메시지 보다 높다는 의미이다. 내 친구가 가족이 알려준 정보 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있는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서 더 쉽게 영향력 높은 정보를 이전 대비 훨씬 빠른 속도로 보내거나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SNS가 있다. 해외는 페이스북 왕국이 되어버렸지만 국내는 아직 완벽한 대세를 이루는 SNS는 없는 상황이다. 한국적 폐쇄적 SNS인 싸이월드의 근근함, 지인 중심을 통한 페이스북의 부상, 언제나 이슈에 중심에 선 트위터, 네이버의 막강한 화력지원의 미투데이가 대표적이지만 이 중 확역한 대세는 없다. 하지만 최근 페이스북의 성장은 체감적으로 꽤 놀랍다. 이제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대학교 지인들, 현재, 과거 회사 동료들, 가족들이 있다. 이전 싸이월드 팬덤의 전초전 양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국내 친화적이지 않은 서비스 구조와 별다른 마케팅 활동도 없음을 감안하면 더욱 놀랍다. 트위터는 SNS이기 보다는 관계를 기반으로 한 정보 소통이라는 미디어적 성격을 가진 독특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는 듯 하다. 트위터 자체에 특별한 정보가 있지는 않지만 해당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들이 집대성 되는 느낌이다. SNS는 내가 얼마나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가에 의해서 활성화가 결정된다. 대상에 대한 관심은 결국 얼마나 들어와서 보는지, 내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상대방의 의견에 얼마나 내 의견을 주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또한 모바일을 통해서 PC 중심 대비 확연하게 많은 기회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푸쉬 기능을 통해 지속적인 관심을 유도한다. 트위터를 통해 집대성한 정보들을 통해 아주 쉽게주요 이슈에 대한 접근, 이해가 가능하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지인들에게 전파하고 전파 받는다. 본인은 특별한 노력을 안해도 정보들에 아주 쉽게 노출되는 것이다.

결국 모바일 환경의 도래와 SNS를 근간으로 이전 대비 정보들에 대한 접근성이 비약적으로 증대된 것이 현재이다. 그리고 단순하게 정보양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Fact만 듣는 것이 아니라 Fact에 대한 해석, 나아가 통찰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정보를 얻게 되는 쪽에서는 현상과 대상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를 하게 된다. 이해력이 증대되면 결국 자신도 통찰을 갖게 된다. 이렇게 갖게 된 통찰은 특정 메시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더욱 정확하게 하게 해준다. 메시지를 발신하는 입장에서 보면 헐거운 논리나 거짓정보로 전혀 설득이 안됨을 의미한다.


현재 정치권이 대표적이다. 예전에는 공중파 방송, 조중동의 전통적 미디어에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던지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메시지를 분석하기 시작하고 도리어 더욱 강하게 반격하고 논리적 허점을 파고든다. 즉 완벽한 논리를 이야기하던지, 진실을 이야기해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나 여당에서 가장 현실판단을 못하고 있는 부분이 이 부분이라 생각한다. 정보를 제한할 수 있다 생각하고 섣부른 논리로 납득시킬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모바일, SNS 등의 수 많은 채널로 폭주하는 정보를 절대 통제할 수 없으며 전체 중 1명이라도 섣부른 논리를 깰 수 있다면 전체 또한 아주 쉽게 그 허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진실을 이기는 논리는 없으니 근본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 부분을 절대 이해 못하는 것 같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함량미달의 제품 서비스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절대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거나 이전과는 다른 수준의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뿌리깊은 나무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백성이 글을 알게 되면 읽고 싶어지고 읽게 되면 쓰고 싶어지고 결국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 조선시대에서는 글이겠으나 현시점에는 모바일과 SNS가 그렇다. 모바일과 SNS를 통해서 수 많은 정보들과 많은 이들의 의견을 통해 현명해지게 되고 현명해지게 되면 또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이야기된 말은 다시 확대 재생산 된다. 이 지점이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만 계속 이야기를 했는데 반대로 보면 진실과 정말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라면 특별한 비용이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아주 쉽게 전파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정치도 기업도 진심에 더욱 가까울수록 성공할 가능성 또한 높아지지 않을까? (결론이 참으로 아날로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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